평판조회.
흔히 ‘레퍼런스 체크(Reference Check)’로 알려져 있다. 경력직 직원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 기존 직장에서 업무 능력이 어땠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당사자가 아닌 주변 인물들에게 질문하는 까닭에 ‘소리 없는 면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회사에 들어올 직원 성향을 점검하는 중요한 작업이지만, ‘주먹구구’ 식으로 시행하는 사례가 많았다. 같이 일했던 직원 또는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만 듣는 형태로 끝나고는 했다. 설령 평판이 ‘나쁘더라도’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이미 채용이 확정된 상태에서 뒤늦게 확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탓이다. 공채 출신 선호도가 높고, 경력 채용이 많지 않았던 국내 기업들은 소수 경력직 직원들의 평판조회에 힘을 쏟지 않았다. 적어도 임원급의 직원을 채용할 때만 평판을 주로 조회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 이후 채용 트렌드가 변하며 흐름이 바뀌었다. 신입 채용 대신 경력직 직원을 선호하는 풍토가 생기며 경력직 직원들이 조직 내 핵심 인재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조직을 책임질 직원의 평판을 확인하는 게 중요한 작업이 됐다. 조직 내 평판은 채용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스펙으로 변신했다. 평판조회 대상도 임원급에서 과장·대리 등 일반직급으로 확대됐다.
평판조회 수요가 폭발하며 시장이 덩달아 커지고 있다. 헤드헌팅 업체는 물론, 채용 플랫폼인 사람인과 인크루트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아예 평판조회만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까지 등장했다.
평판조회는 임원급 경력자는 물론, 신입 직원들까지로도 확대되는 추세다. 연구직 신입의 경우 대학 생활을 조회하기도 한다. (매경DB)
평판조회 강화 나선 헤드헌팅 업체
전문 서비스 설립하고 수요 대응
평판조회 시장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헤드헌팅 업체들이다. 본래 헤드헌팅 업체는 평판조회를 인재 채용 과정의 하나로 활용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찾는 과정에서 해당 인물의 평판을 확인하는 것은 헤드헌터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그런데 평판조회 시장이 급성장하자 아예 평판 업무만 담당하는 센터를 만든 것. 대형 헤드헌팅 업체들이 중심이 돼 사업을 적극 키우는 중이다.
커리어케어는 2021년 평판조회 전문 서비스 ‘씨렌즈’를 선보였다. 씨렌즈의 특징은 ‘투 트랙’이다. 채용 예정자가 지목한 사람에게 평판을 의뢰하는 ‘지정 조회’와 채용 예정자와 같이 일해본 직원 중 무작위로 골라 질문을 던지는 ‘비지정 조회’로 평판을 평가한다. 이때 채용 예정자로부터 비지정 조회를 할 것이라는 동의서를 받고 진행한다. 이후 두 조회처의 인터뷰 결과를 정리해 보고서로 정리한다. 사람들의 평가가 일치하면 ‘적합’ 판정을 내린다. 컨설턴트들이 직접 심층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정량 점수까지 매긴다. 씨렌즈센터 관계자는 “다양한 의뢰인들과의 심층 면담을 통해 업무 전문성, 인성, 커뮤니케이션 스킬, 리더십, 조직 융화도 등 항목을 평가한다. 직급이 높을수록 조회처 숫자가 많아진다. 임원급을 채용하는 경우 보고서 페이지 양이 상당하기 때문에 총평을 요약한 페이지를 별도로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형 헤드헌팅 업체 유앤파트너스는 평판조회 전문 법인 ‘하이어베스트’를 운영한다. 하이어베스트는 평판을 3단계로 나눠 검증한다. 각종 학력과 경력, 범죄 사실 여부를 조회하는 ‘배경 확인 서비스(Background Check Service)’ 후 지명 평판조회를 거친다. 지명 평판조회는 앞서 말한 지정 조회와 마찬가지로 후보자가 지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평판을 조회하는 작업이다. 이후 비지명 평판조회를 거친다. 비지명 평판조회는 앞서 말한 커리어케어의 비지정 조회와 유사한 시스템이다. 하이어베스트가 자체적으로 발굴한 인원을 대상으로 후보자의 평판을 조회한다. 헤드헌팅 업계 관계자는 “헤드헌팅 업체들은 오랫동안 인재 채용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쌓아온 네트워크가 탄탄하다. 후보자가 누구와 일했는지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정 조회는 후보자에게 우호적인 사람에게만 평판을 들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중립적인 시선을 가진 제3의 인물에게 듣는 평가가 중요하다. 헤드헌팅 업체는 가장 ‘객관적’인 정보를 기업 고객에 제공 가능하다는 게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인크루트는 2021년 평판조회 플랫폼 ‘레퍼런스 체크’를 공개했다. (인크루트 제공)
일반직급 평판조회 급증에
채용 정보 플랫폼들 속속 참전
사람인과 인크루트 등 채용 플랫폼도 시장에 적극 뛰어든다. 헤드헌팅이 임원급 직원 채용 시장에 강세를 보였다면, 채용 플랫폼은 일반직급 채용 분야에 강세를 띤다. 일반 직원에 대한 평판조회 수요가 커지면서, 해당 업체들이 평판조회 시장에 적극 진출 중이다.
사람인은 ‘더 플랩 레퍼런스 체크’ 서비스를 개발·운영하고 있다. 특징은 ‘효율성’이다. 사용 방법이 간단하고, 평판조회 작성과 확인까지 시간이 적게 소모된다는 게 사람인 측 설명이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후보자가 직접 본인의 전화번호와 함께 본인 정보와 평판을 요청할 조회자를 입력한다. 참여를 요청받은 평판 제공자는 본인 정보를 직접 입력한 후 평판을 입력한다. 후보자가 지정한 평판 제공자에게만 평판 요청이 들어간다. 후보자와 평판 제공자는 실명 인증을 거쳐야 한다. 이후 여러 제공자의 응답과 후보자 본인 응답 간 차이를 보는 갭(GAP) 분석, 후보자에 대한 역량 평가, 성향 분석 결과를 함께 반영해 입체적으로 후보자를 검증한다.
사람인 관계자는 “채용 플랫폼을 운영하다 보니 평판조회는 하고 싶은데, 여건이 안 되는 회사가 많다는 점을 발견했다. 평판조회 대행 서비스를 원하는 기업이 많다는 점에서 착안, ‘더 플랩 레퍼런스’를 만들었다. 현재 약 300여개의 회사가 해당 서비스를 이용 중”이라고 전했다.
인크루트는 2021년 12월 평판조회 솔루션인 ‘레퍼런스 체크’를 공개했다. 모바일을 통해 입사 후보자와 평판 제공자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 시간과 장소 구애 없이 간편하게 평판조회에 참여 가능한 게 장점이다. 방식은 다음과 같다. 기업 인사 담당자가 설정한 질문지를 평판 제공자에게 링크로 공유한다. 제공자는 PC나 모바일을 통해 질문에 대한 답신을 전달한다. 이후 온라인 다면평가가 이어진다. 직전까지 근무했던 곳의 상급자, 동료, 하급자 등의 모든 구성원에게 확인하는 절차다. 온라인으로 회수된 피드백은 인크루트 레퍼런스 체크를 통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리포트로 제공된다. 인크루트 관계자는 “최근 연차 대비 업무 경험이 부족하거나 커리어 성장이 더딘 인재가 많다. 짧은 면접과 서류상 숫자만으로는 인재의 능력을 다 검증하지 못한다. 최근 기업들이 평판조회에 적극 나서는 이유다”라고 귀띔했다.
스타트업도 평판조회 시장에 적극 뛰어든다. ‘스펙터’와 ‘위크루트’다. 스펙터는 인력에 대한 사내외 평가를 따지는 일명 ‘평판조회’ 서비스를 제공한다. 채용 기업이 경력직을 선발할 채용 대상자의 수년 동안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다. 위크루트는 평판조회 솔루션 ‘체커’를 제공한다. 경력직 채용에 필요한 평판조회 과정을 자동화한 서비스다. 위크루트는 체커를 크게 세 등급으로 나눴다. 임원·리더급 채용을 위한 ‘체커 프리미엄’, 일반·경력직 채용에 활용하는 ‘체커 오토’ 그리고 신입·인턴·알바 채용을 위한 ‘체커 루키’다. 임원과 일반 직원은 물론, 인턴과 신입 직원의 평판 확인도 원하는 수요가 많다는 점을 겨냥했다.
사람인은 ‘더 플랩 레퍼런스 체크’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람인 제공)
소리 없는 면접 평판조회
직장인들 유의해야 할 사항은
일반 경력직 직원들도 철저한 ‘평판조회’ 대상이 되면서 평소 평판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직장인이 많다. 전문가들은 평판 관리의 핵심 키워드로 개성·솔직함·관계 관리 3가지를 제시한다.
우선 ‘개성’이다.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히 해 조직 내에 ‘인상’을 강하게 심어줘야 한다는 것. 채용 업계 관계자들은 평판에서 가장 안 좋은 게 무색무취라고 설명한다. 평판을 조회했는데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으면 평가가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 때문에 자신의 업무 스타일·성격 등을 파악해 조직원에게 자신을 확실히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배영 씨렌즈센터장은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한 사람은 리더십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다. 남을 돕는 서포트형, 앞장서서 이끄는 카리스마형 등 본인만의 스타일을 정립해야 한다. 조직 내에 색깔을 확실히 해두면 평가도 좋다. 최악의 유형은 어떤 인물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솔직함’이다. 기존에는 자기소개서나 경력기술서를 과장해서 작성해도 회사에서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평판조회가 일반화되며 ‘부풀린 스펙’은 바로 확인이 가능해진 시대다.
인크루트 관계자는 “이력서에 기재한 내용과 실제 경력이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취업 욕심 때문에 경력을 부풀린 경우가 많은데, 평판조회 과정에서 실제와 다를 경우 입사가 취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는 꾸밈없이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으로 ‘관계 관리’다. 성과만큼 인간관계를 잘 정리하라는 설명이다. 조직 융화도가 평판조회의 핵심 평가 사유 중 하나여서다. 전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상사·동료의 평가는 평판조회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좋은 성과를 거둔 사람이라도, 과거 동료들의 평가가 좋지 못하다면 평판조회를 통과하기 힘들다. 사람인 관계자는 “성과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도, 평소 성실하고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과거 동료들에게 평가가 좋았다면 평판조회를 통해 더 높은 처우를 제시받을 수 있다. 직속·유관부서 직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필수다”라고 전했다.
[인터뷰] 배영 씨렌즈센터장
평판조회가 채용 ‘당락 결정’…관리 잘해야
배영 씨렌즈센터장
배영 씨렌즈센터장은 오랜 기간 헤드헌터로 활동해오며 평판을 조회해온 ‘전문가’다. 전문성을 인정받아 커리어케어의 평판조회 전문 서비스 ‘씨렌즈’의 센터장을 맡아 활동 중이다. 평판조회 전문가인 배 센터장에게 현재 시장의 트렌드와 직장인들이 유의해야 할 점 등을 물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Q. 평판조회 수요가 커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A. 경력직 채용이 늘면서 철저한 인재 검증을 원하는 수요가 많아졌다. 보통 경력직은 1시간 면접으로 채용이 결정된다. 문제는 1시간 면접으로는 인재의 모든 부분을 다 평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면접만 보고 직원을 채용했는데, 직원이 회사에 적응하지 못해 인사 담당자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 많았다. 재직자 역시 급하게 이직한 후 조직이 자신과 맞지 않아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사람이 우리와 맞는지 평판을 조회하려는 기업이 많아지는 이유다.
평판조회가 시간은 꽤 걸린다. 그러나 의뢰만 해놓으면 오랫동안 지켜봤던 분들의 의견을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받아볼 수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좋은 도구다.
Q. 과거에 비해 평판조회 요청이 많아졌나.
A. 많아졌다. 시장 자체가 커지는 모양새다. 사람 검증이 중요한 때가 됐다. 기업들도 평판조회에 비용을 쓰는 게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반직급 채용에서도 기업들이 상당히 심혈을 기울인다.
Q. 기업은 평판조회를 통해 인재의 어떤 능력을 검증하고 싶어 하나.
A. 다양한 능력을 전반적으로 검토하려고 한다. 업무 전문성은 기본이다. 경력직의 경우 이력서에 낸 성과 부분을 집중 확인한다. 일부 지원자가 부풀려서 쓰는 경우가 있어서다. 성과에서 지원자의 역할, 팀 기여도 등을 파악한다. 다음으로 업무 태도다. 지정 조회, 비지정 조회를 통해 업무 태도를 다방면으로 관찰한다. 업무 전문성, 인성, 커뮤니케이션 스킬, 리더십, 조직 융화성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정보를 제공한다.
Q. 평판조회가 앞으로도 중요할까.
A. 중요하다. 평판조회는 앞으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단순 점검에서 이제는 당락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지 않았나. 평판조회하면 온갖 뒷얘기가 다 나온다. 연구직의 경우 대학 생활까지 조회가 들어간다. 동료 대학원생, 교수에게 평판조회 요청이 간다. 직장 생활뿐 아니라 학창 시절에도 평판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력을 제대로 개발하고 싶다면 조직 생활하는 내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0호·신년호 (2022.12.28~2023.01.03일자) 기사입니다]
작 성 | 매경이코노미 반진욱, 신지안, 홍주연, 진욱 기자
출 처 | 매경이코노미 2022-12-23